여러 갈래 길 앞에서 넓은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네마틱 셀 일러스트

미래를 예측하지 않고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미래를 말할 때 우리는 자주 하나의 그림만 그립니다

계획을 세울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내일을 예상하는 것입니다. 일정이 어떻게 흘러갈지, 어떤 기술이 자리를 잡을지, 사람이 무엇을 선택할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듭니다. 이야기가 선명할수록 우리는 준비됐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그 선명함은 미래의 정확성보다 현재의 확신을 반영할 때가 많습니다.

법률 글을 쓰는 일도 비슷합니다. 판례의 흐름을 정리하고 제도의 다음 변화를 전망하다 보면, 설명이 매끄럽다는 이유로 한 방향만 남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제도는 사람의 행동, 새로운 사건, 입법과 기술,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만나 다른 길로 갑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좋은 문장은 예언보다 전제의 목록에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UNESCO가 말하는 미래문해력

UNESCO의 Futures Literacy and Foresight는 미래를 정확히 맞히는 기술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여러 가능한 미래를 상상하고, 우리가 현재의 결정을 내릴 때 어떤 미래상을 사용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역량을 강조합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더 잘 준비하고 회복하며 새로운 선택을 만들기 위한 능력입니다.

이 생각에서 제가 받아들인 부분은 ‘미래를 사용한다’는 표현입니다. 미래는 도착하기 전까지 확인할 수 없지만, 우리는 이미 특정한 미래를 가정해 예산을 배분하고 규칙을 만들며 글의 결론을 정합니다. 미래문해력은 그 가정을 숨은 전제에서 검토 가능한 문장으로 끌어냅니다.

예측과 준비는 같은 일이 아닙니다

비가 올 확률을 맞히는 일과 비가 오거나 오지 않을 때 모두 움직일 수 있게 준비하는 일은 다릅니다. 예측은 하나의 확률에 집중하지만 준비는 여러 결과에서 후회가 적은 선택을 찾습니다. 정확한 예측이 가능한 영역에서는 예측이 중요합니다. 다만 변수가 많고 사람의 대응이 다시 결과를 바꾸는 영역에서는 준비의 구조가 더 오래 갑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도구가 법률업무를 얼마나 바꿀지 단정하는 대신 세 장면을 그릴 수 있습니다. 도구가 반복업무를 크게 줄이는 경우, 성능은 높지만 검증비용이 함께 커지는 경우, 규제와 신뢰 문제로 제한된 영역에서만 쓰이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지금 필요한 선택도 달라집니다. 자동화 하나에 모든 절차를 맞추기보다, 원자료를 확인하는 습관과 결과를 되돌릴 수 있는 기록을 남기는 편이 세 장면 모두에서 유효합니다.

여러 미래를 그리는 일은 결정을 미루는 핑계가 아닙니다

가능성을 많이 나열하면 아무 결론도 내리지 않는 태도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시나리오는 모호함을 늘리지 않습니다. 각 미래가 성립하려면 무엇이 참이어야 하는지, 어떤 신호가 나타나면 방향을 바꿀지 정합니다. 결정은 하되 수정조건을 함께 적는 것입니다.

저는 이 방식을 글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결론 뒤에 ‘다만’이라는 예외를 붙이는 수준을 넘어, 결론을 떠받치는 조건을 앞에서 밝힙니다. 그 조건이 바뀌면 독자도 결론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이해합니다. 강한 문장은 예외가 없는 문장이 아니라, 어디까지 강한지 경계가 보이는 문장입니다.

현재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한 미래

미래를 상상하는 목적은 먼 곳을 오래 바라보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지금 당연하게 여긴 것을 낯설게 보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이 서비스를 계속 쓸 것이다’, ‘자료는 언제든 찾을 수 있다’, ‘이 규칙은 모든 경우에 공평하다’ 같은 문장을 다른 미래 앞에 세워보면 전제가 드러납니다.

그 전제가 틀릴 가능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오늘의 결정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백업하고, 이의절차를 만들고, 일정 기간 뒤 다시 검토하는 장치를 넣을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은 무력함의 이유가 아니라 되돌릴 수 있는 선택을 설계할 이유가 됩니다.

준비된 사람의 문장은 조금 덜 단정적입니다

덜 단정적인 문장은 약한 문장과 다릅니다. 근거가 확인된 범위에서는 분명하게 말하고, 확인되지 않은 범위에서는 조건을 밝힙니다. 예측을 의견으로 표시하고, 사실과 섞지 않습니다. 신호가 바뀌면 판단도 바꿀 수 있도록 여백을 남깁니다.

미래를 가장 잘 맞히는 사람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능성 앞에서도 지켜야 할 기준을 정하고, 틀렸을 때 고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저는 그 태도가 예측보다 오래가는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글쓴이 손호영

부장판사 ·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형사조) · 전 서울회생법원 판사 · 서울대 법학박사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대신 정리해주는 3개년 형사판례공보』 저자 · 법률저널 〈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60회 이상 연재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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