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풀어드리는 손호영입니다.
날짜는 정확해도 묶는 단위가 틀리면 결론이 달라집니다. 누범을 판단할 때에는 먼저 어느 행위들이 하나의 범죄인지를 확인합니다.
같은 사업에서 지급된 돈이라도 신청자의 이름과 돈의 흐름은 달랐습니다. 누범 전과가 있는 사람이 행한 오랜 시간 이어진 사기 사건에서 법원이 먼저 읽어야 했던 것은 달력이 아니라 범죄일람표였습니다. 범행을 어떻게 묶을지 정해져야, 누범기간 안과 밖이라는 다음 질문이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포괄일죄의 일부 실행행위가 누범기간 안에 있으면, 나머지가 그 기간이 지난 뒤에 이루어졌더라도 그 범죄 전체가 누범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행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지는 별도로 심사해야 합니다. ‘같은 종류의 사기’라는 설명만으로 모든 지급을 한 덩어리로 만드는 것은 출발점을 생략하는 일입니다.
단지 ‘반복 사기는 모두 하나의 죄’라고 소개하면 핵심을 놓칩니다. 판결은 반복성만 보지 않았습니다. 행위들을 잇는 범의가 단일하고 계속되었는지, 방법과 피해법익이 같은지 확인합니다.
1. 문제: 누범기간이 지난 뒤의 행위도 누범으로 평가되는가.
2. 판단 포인트: 신청자별 범죄의 단위를 정한 다음 그 안의 실행시기를 대조한다.
3. 킥: 달력에 선을 긋기 전에 범죄의 경계를 그어야 한다.
표면의 문제는 기간, 실제 쟁점은 단위입니다
날짜별로 책임을 잘라 설명하는 방식에는 직관적인 장점이 있습니다.
자칫, 시간이 길게 이어지므로 마지막 시간을 기준으로 해서, 이미 누범기간이 끝났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지급이 누범기간 이후라면 그 지급만큼은 다른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형법은 각 행위를 언제나 독립된 범죄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일정한 조건 아래 여러 실행행위를 하나의 범죄로 파악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판단에는 두 층이 필요합니다.
먼저 행위가 연결되는지 심사하고, 이어 확정된 범죄의 단위에 시간 조건을 적용합니다.
두 번째 질문부터 풀면 자신이 원하는 결과에 맞춰 첫 번째 단위를 움직이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누범을 피하려고 범행을 잘게 나누거나, 누범을 적용하려고 서로 다른 행위를 과도하게 합치는 방식 모두 같은 오류를 갖습니다.
‘같은 사업’, ‘같은 계좌’, ‘가까운 날짜’는 연결의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사정이 입증하는 내용은 다릅니다. 같은 계좌로 돈이 들어왔다는 사실은 수령 방식의 공통성을 보여 줄 뿐, 모든 행위자의 범의까지 자동으로 하나로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신청자의 이름이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매번 별개의 죄가 된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름 뒤에 실제로 달라진 기망 구조와 돈의 용도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결정적 사실은 경계의 양쪽에 있었습니다
법원이 확인한 법리는 포괄일죄 일부가 기간 안에 있는 경우 전체를 누범으로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이 단순한 법리에 대해 제가 이 글에서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그 법리를 적용하기 전에 일람표의 묶음부터 검토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판결의 결론과 기록을 읽는 방법을 구별하면 다른 사건에 무리 없이 옮겨 갈 수 있습니다. 모든 반복 범죄가 이 사건과 같다는 결론까지 옮겨서는 안 됩니다.
| 먼저 확인할 것 | 필요한 자료 | 섣불리 할 수 없는 판단 |
|---|---|---|
| 범행들의 연결 | 신청 내용·관여자·돈의 흐름 | 죄명이 같으니 모두 한 죄 |
| 범죄의 시간 범위 | 각 실행행위의 날짜 | 마지막 날짜만으로 누범 제외 |
| 누범의 기준일 | 형 집행 종료·면제 자료 | 전과 선고일만으로 기간 계산 |
하나로 묶으면 반드시 유리할까요
여러 범행을 하나의 죄로 보는 판단은 경합범의 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포괄일죄는 피고인에게 언제나 유리한 개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한 법적 평가에서의 효과가 다른 평가에서도 같지는 않습니다. 누범처럼 기간의 경계를 문제 삼는 제도에서는 묶음 전체에 평가가 미치는 일이 생깁니다. 법적 개념은 유리한 별명보다 구체적인 작동 방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누범에 해당한다는 말이 곧 구체적인 선고형을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법정형을 구성하는 규정과 실제 형량을 정하는 판단은 구별됩니다. 죄수, 누범, 양형은 서로 연결되지만 동일한 질문은 아닙니다. 한 판단에서 얻은 결론으로 다음 판단의 사정까지 미리 지워서는 안 됩니다.
반대 논리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간 밖 행위까지 누범으로 평가하면 시간에 따른 책임 차이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가 가능합니다. 이 우려는 단위를 정할 때 더욱 엄격한 확인이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기간 안의 행위를 단지 연결고리로 삼아 실제로 독립된 행위들을 무리하게 포괄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판례의 적용과 그 적용 범위를 신중하게 관리하는 일은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판사는 기록에서 무엇을 보는가
먼저 펴는 곳
범죄일람표를 먼저 펼칩니다. 신청자, 기망 내용, 수령자, 지급일을 별도 열로 나누어 같은 날짜라는 이유로 서로 다른 범행이 합쳐지지 않았는지 봅니다.
멈추는 곳
기간 안의 행위가 무엇인지에서 멈춥니다. 단지 신청서가 제출된 날인지, 재산 처분과 취득에 연결된 실행행위인지에 따라 시간표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맞춰보는 곳
형 집행 종료 자료와 각 범죄의 실행시기를 맞춰 봅니다. 전과의 선고일이나 출소일만 적어 둔 표는 법이 요구하는 기준일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여백의 메모
하나로 묶으면 가벼워질 것이라는 직관을 경계합니다. 죄수 판단의 효과는 경합범 처리뿐 아니라 누범 등 다른 법적 평가에도 이어집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된 칼럼이며, 소속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개별 사안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필요한 경우 법률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글쓴이 손호영
부장판사 ·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형사조) · 전 서울회생법원 판사 · 서울대 법학박사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대신 정리해주는 3개년 형사판례공보』 저자 · 법률저널 〈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60회 이상 연재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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