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를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감정에 휩쓸리지 말자고 권하는 일은 익숙합니다. 어려운 순간은 그 말이 자신에게 돌아올 때입니다.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결론에도 같은 정도의 근거를 요구할 수 있을까요.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 설명할 때도 빠진 전제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전문가의 자기비판은 바로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2026년 5월 28일 Aeon에 실린 엘리안 글레이저의 「Flickering Enlightenment」는 이성, 공통의 사실, 토론과 인권을 옹호하면서도 계몽의 역사에 있었던 차별과 모순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좋았던 것만 남기려는 옹호도, 잘못을 근거로 전부 버리려는 거부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글의 출발점입니다.
그는 특히 끊임없는 비판을 계몽의 중요한 유산으로 봅니다. 여기에는 세계에 대한 비판과 자신에 대한 비판이 함께 들어갑니다. 전문가가 공격받는다는 이유로 자기 확신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태도 역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성이 중요하다는 입장이 이성을 말하는 사람의 무오류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는 말에 가려지는 것
저는 형사판례집을 출간하고 있고, 법률에 관한 글과 강의 영상도 만들고 있습니다. 판례를 정리하는 일에는 결론을 정확하게 전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동시에 그 결론이 왜 나왔는지, 어디까지 적용되는지를 설명하는 책임도 있습니다. 두 책임을 함께 생각하면 문장의 자신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보입니다.
가령 어떤 판결을 설명하며 특정 행동이 범죄가 된다고 쓰면 독자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동의 의미가 상대방과의 관계, 시점, 인식에 따라 달라지는 사안이라면 쉬운 문장이 중요한 차이를 없앨 수도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문장을 다시 어렵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독자가 무엇을 확인해야 결론에 이를 수 있는지를 쉬운 말로 복원하는 일입니다.
경험이 많으면 어디가 중요한지 빨리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빠르게 알아본다는 것과 실제로 확인했다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경험은 확인의 순서를 안내할 수 있지만, 확인할 사실을 대신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내가 익숙한 유형을 보았다는 감각이 강할수록, 이번 자료가 그 유형과 다른 지점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확인이 끝나기 전에 익숙함을 결론으로 사용하면, 경험이 오히려 차이를 가릴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단지 겸손의 미덕으로만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예의 바르게 말하는 사람도 자기에게 유리한 자료만 고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단호하게 말하면서도 상대의 반론을 정확히 옮기고 자신의 전제를 공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비판이 작동하는지는 말투보다 판단의 과정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무엇이 내 결론을 바꿀 수 있는지가 그 과정에 남아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요구한 설명을 내게도 요구하기
내가 주장하는 결론에 대해 상대가 질문하면, 먼저 질문의 내용을 받아 적듯 이해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질문은 사실이 빠졌다는 지적이고, 어떤 질문은 같은 사실을 다르게 평가해 달라는 요구입니다. 어떤 질문은 결론을 바꿔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설명해 달라는 뜻인 경우도 있습니다. 모두를 같은 종류의 반대라고 보면 대답도 거칠어집니다.
내 판단에 문제가 없다는 답을 하기 전에, 내 설명으로 그 질문을 해결할 수 있는지부터 살피는 편이 좋겠습니다. 결론이 맞는 것과 설명이 충분한 것은 서로 어긋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결론을 매우 짧게 말하고도 그 과정은 충분히 보여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곧바로 그 사람의 이해 능력에 돌리면 설명하는 사람에게 남은 일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모든 질문에 끝없이 답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주장이 반복되거나, 이미 확인한 사실을 아무 근거 없이 뒤집는 경우도 있습니다. 판단에는 마감이 있고, 업무에는 다른 사람의 시간도 걸려 있습니다. 자기비판을 이유로 결론을 영원히 미루는 것은 또 다른 무책임이 될 수 있습니다. 필요할 때 결론을 내리는 책임과 결론에 이른 이유를 돌아보는 책임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두 책임을 구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가진 자료로는 이 결론에 이른다는 말과, 추가로 이런 사실이 확인되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결론을 애매하게 하기 위한 표현이 결코 아닙니다. 어느 부분이 확인됐고 어느 부분이 아직 열려 있는지 표시하는 표현입니다.
신뢰는 기준이 돌아오는 방향에서 생깁니다
직함과 경력은 독자가 글을 읽기 시작하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글의 내용을 믿을 이유는 본문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확인한 자료와 저자의 생각이 구별되고, 결론에 이르는 연결이 보이고, 예외가 필요한 자리에 놓여 있어야 합니다. 이름 앞에 붙는 소개가 길어질수록 본문의 설명이 짧아져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소개의 무게만큼 설명의 책임도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의 글에 요구할 정확성을 내 글에도 요구했는가,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에 요구할 근거를 내가 좋아하는 주장에도 요구했는가, 잘 모르는 독자에게 친절하자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이미 아는 사람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쓰지 않았는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 하고자 합니다.
글쓴이 손호영
부장판사 ·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형사조) · 전 서울회생법원 판사 · 서울대 법학박사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대신 정리해주는 3개년 형사판례공보』 저자 · 법률저널 〈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60회 이상 연재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설명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