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드는 서버실 복도에서 제어 스위치 앞에 멈춘 손과 담당 직원

알고도 막지 않았다면 공범일까요? 부작위 방조의 네 질문

안녕하세요.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풀어드리는 손호영입니다.

〈판사의 렌즈〉

범행을 알았다는 사실과 그 범행을 막아야 할 법적 의무는 다른 질문입니다. 침묵의 책임은 그 사이의 연결을 증명할 때 비로소 구체화됩니다.

동료가 부정한 일을 하는데, 모른 척하면 공범일까요?

회사에서 거래자료를 관리하는 사람이 동료의 허위 청구를 알게 되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가 직접 서류를 만들거나 돈을 나누어 갖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담당 업무에 따라 계정 접근을 차단하거나 담당자에게 보고할 여지가 있었는데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알면서 놔뒀으니 함께 한 것”이라는 평가는 어디까지 법적 판단이 될 수 있을까요?

부작위(하지 않음)에 의한 방조는 가능합니다. 다만 범죄를 알아차리고도 막지 않은 모든 사람이 방조범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막아야 할 법적 의무, 가능한 조치, 범행을 쉽게 한 연결, 범행과 도움에 대한 고의를 나누어 확인해야 합니다. 단순한 비난에서 형사책임으로 넘어가는 문턱은 이 네 질문에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왜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방조는 다른 사람의 범죄 실행을 쉽게 해주는 행위입니다. 도구를 건네거나 범행을 격려하는 적극적인 행동뿐 아니라, 해야 할 조치를 하지 않아 범행이 계속되도록 하는 경우도 문제 됩니다. 형법 제18조는 위험을 방지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나 스스로 위험의 원인을 만든 사람의 부작위를 규정하고, 제32조는 종범의 근거를 둡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볼 말은 “할 수 있었다”와 “해야 했다”입니다. 누군가 잘못을 멈출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에게 그 결과를 방지할 형법상 의무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우연히 사정을 알게 된 직원과, 해당 업무를 맡고 위험을 통제하기로 한 책임자는 같은 자리에 서 있지 않습니다. 직급이 높다는 말도 맡은 의무의 내용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판례는 직함 뒤의 실제 통제권을 확인했습니다

대법원 2006. 4. 28. 선고 2003도4128 판결은 인터넷 포털의 오락채널 팀장과 만화사업 담당 직원의 책임을 다뤘습니다. 이들은 콘텐츠업체의 음란만화가 계속 제공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판결이 확인한 것은 단지 그들의 직책이 아니었습니다. 계약에 따른 관리·감독 관계, 콘텐츠 검색과 파악의 가능성, 서버에 관한 일반적인 통제권한, 실제 삭제 또는 삭제 요구를 한 사실이 함께 검토됐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권한과 능력 등을 바탕으로 콘텐츠업체에 삭제를 요구할 조리(쉽게 말해 일반상식)상의 의무를 인정했습니다. 법령·계약·선행행위뿐 아니라 신의성실이나 조리도 작위의무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한 것입니다.

저는 이 판결을 “인터넷 사업자는 전부 책임진다”는 결론보다 누가 어떤 위험을 관리하는 일을 실제로 맡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꿔 읽는 편이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법률상 의무의 존재는 구체적인 관계에서 밝혀야 합니다. 문제가 발생한 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성실함을 거꾸로 끌어와 당시의 형사상 의무로 만드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의무가 있었다고 고의도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관리자가 주의를 기울였으면 범죄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정과, 범죄를 알면서 그 실행을 돕겠다는 인식은 구별됩니다. 감시를 소홀히 했다는 사실은 업무상 과실의 단서가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고의의 방조가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주의의무 위반을 입증한 자료를 고의의 증거로 그대로 옮겨놓으면 주관적 요건 하나가 사라집니다.

대법원 2005. 4. 29. 선고 2003도6056 판결은 방조의 고의와 정범의 범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범행의 모든 세부 내용을 확정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미필적 인식이나 예견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이 판결은 적극적인 업무 수행에 의한 방조를 다뤘습니다. 부작위 사건에서는 이 고의 법리에 더하여 작위의무와 이행 가능성을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고의는 마음속 사실이라 대개 간접사실로 판단합니다. 구체적인 경고를 언제 받았는지, 그 뒤 어떤 조치를 했는지, 동일한 위험을 반복해서 보고받았는지, 차단 권한을 알고 있었는지 등이 중요합니다. 반대로 이미 담당자에게 신고하고 접근을 차단하려 했는데 조치가 실패한 경우라면, 결과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방조 의사를 추정하기 어렵습니다.

[이 글 요약]

① 문제: 알고도 움직이지 않은 사람에게 공범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② 판단: 의무·조치 가능성·범행과의 연결·고의를 각각 확인합니다.

③ 기억할 말: 침묵의 의미는 맡은 역할과 당시의 선택에서 드러납니다.

“조금만 움직였으면 막았다”는 주장도 검증해야 합니다

피해가 컸을수록 손쉬운 개입을 하지 않은 사람이 더 비난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후에 생각해낸 대응책이 실제로 그때 가능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접근 권한이 없었는지, 보고 체계가 작동했는지, 범행을 중단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지에 따라 하지 않은 행동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권한이 있다는 설명과 즉시 통제할 수 있었다는 설명도 동일하지 않습니다.

또 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 범죄 실행을 어떻게 쉽게 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막을 의무를 위반했다는 판단과 범죄를 도왔다는 판단을 별도로 적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자료 승인권을 가진 사람이 고의로 승인을 통과시킨 경우와, 완결된 범행을 뒤늦게 알고 보고를 하지 않은 경우는 시간적 구조가 다릅니다. 범행 후 은폐는 별도의 범죄가 될 수 있지만 이미 끝난 범행을 부작위로 도왔다는 판단을 저절로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계속 중인 범죄인지도 먼저 정리해야 합니다.

반대쪽에는 “의무를 좁히면 책임자가 침묵 뒤로 숨는다”는 우려를 하기도 합니다. 그 우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무를 형식적인 문서에만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 인수한 업무, 위험을 키운 선행행동, 통제권의 행사와 구체적인 인식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다만 현실적인 책임을 묻는 일과 요건을 생략하는 일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판사는 기록에서 무엇을 보는가

먼저 펴는 곳|업무분장표와 계약서에서 이 사람이 맡은 관리대상을 찾습니다. 직함만으로 의무의 범위를 정하지 않습니다.

멈추는 곳|첫 경고나 보고를 받은 시각에서 멈춥니다. 막연한 이상징후와 구체적인 범죄 인식이 언제 갈라지는지 확인합니다.

맞춰보는 곳|로그·이메일·결재내역을 권한 변경 시점과 대조합니다. 실제 가능한 조치와 사후에 상상한 조치를 구별합니다.

여백의 메모|아무 조치도 없었던 이유를 한 가지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무관심, 능력 부족, 오인, 고의적 방관은 서로 다른 설명입니다.

저는 침묵을 평가하기 전에 역할을 복원합니다

이 문제를 볼 때 저는 역할을 먼저, 선택을 다음으로, 범행과의 연결을 그 뒤로 놓고 고의를 대조하는 순서가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알았으니 의무가 있다”와 “의무가 있으니 알았을 것이다”라는 순환논증을 피해야 합니다. 각 요건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무엇인지 한 줄씩 별도로 적어보면, 같은 사실을 여러 요건의 빈칸에 반복해서 넣고 있는지도 보입니다.

침묵의 형사책임은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맡은 위험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고 무엇을 선택했는지를 묻는 판단입니다. 그 구조를 유지해야 필요한 책임을 묻는 동시에 단순한 주변인을 범죄의 중심으로 끌어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된 칼럼이며, 소속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개별 사안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필요한 경우 법률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글쓴이 손호영

부장판사 ·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형사조) · 전 서울회생법원 판사 · 서울대 법학박사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대신 정리해주는 3개년 형사판례공보』 저자 · 법률저널 〈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60회 이상 연재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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