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풀어드리는 손호영입니다.
〈판사의 렌즈〉
회생채권과 공익채권의 경계는 청구서 날짜에 있지 않습니다. 채권의 발생원인을 먼저 찾고, 법이 특별히 보호한 거래인지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같은 회사에 납품했는데, 받을 방법이 달라질 수 있나요?
거래처가 회생절차에 들어갔다는 통지를 받으면 납품업체는 미수금 장부부터 펼칩니다. 물건은 여러 차례 공급했고 대금은 월말에 한꺼번에 청구했습니다. 어떤 공급은 신청 전에, 어떤 공급은 신청 뒤에 이뤄졌습니다. 이러한 경우 “청구서가 개시결정 뒤에 발행됐으니 새 채권”이라고 정리해도 될까요?
그렇게 단순화하기는 어렵습니다. 회생채권과 공익채권은 지급순서와 권리행사 방식이 다른 분류입니다. 원칙적인 기준은 채권의 주요한 발생원인이 회생절차개시 전인가이고, 그 위에 공급과 계약 이행에 관한 특별규정이 놓여 있습니다. 계약일·실제 공급일·신청일·개시결정일·관리인의 행위를 서로 다른 칸에 적어 분류해야 합니다.
공익채권이면 전액 지급이 보장될까요?
아, 글을 본격적으로 적기 전에, 어째서 회생채권과 공익채권의 분류가 중요한지 짚을 필요가 있겠네요.
채무자회생법에 따르면, 공익채권은, 회생절차에 의하지 않는 수시변제와 회생채권·회생담보권보다 우선하여 변제되기 때문입니다(제180조). 게다가 회생채권은 회생계획에 따라 권리가 변경되는데, 심하면 아예 0원으로 변경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공익채권은 그러한 감면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회생계획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회생절차 내에는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실무적으로 제가 회생법원에 있을 때의 경험을 되살려보면, 공익채권으로 분류되는 순간, “변제허가신청서”가 제출됩니다. 회생인가 등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수시, 우선변제’한다는 뜻이지요. 이만큼 강력한 지위를 부여받기 때문에, 채권자들은 자신의 채권이 회생채권이 아니라 공익채권이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법적 지위에 관한 설명입니다. 회사의 현금 부족까지 해결해주는 약속은 아닙니다. 법에서 정한 사유가 있으면 공익채권에 기한 강제집행도 중지·취소될 수 있습니다.
공익채권을 우선하여 보호해야 하고, 공익채권의 범위를 넓히자는 주장에는 기업의 공급망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현실적 이유를 근거로 합니다. 그러나 공익채권 범위가 반대로 지나치게 넓혀지면 기존 채권자의 몫이 줄고 회생의 토대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저는 두 입장을 거래의 가치만으로 조정하기보다 법이 보호한 시기와 행위에 맞춰 검토하는 편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대금을 달라고 말한 날과 권리가 생긴 원인은 다릅니다
자, 다시 공익채권과 회생채권의 분류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더 적겠습니다.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는 개시 전의 원인으로 생긴 재산상 청구권을 회생채권으로 정합니다. 채권액이 나중에 확정되거나 지급기일이 개시 뒤에 도래한다는 사정은 그 자체로 원인을 옮기지 않습니다. 세금계산서를 나중에 발급한 경우도 발급일만으로 납품의 법적 성격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계약서, 개별 발주, 공급과 검수의 구조에서 대금청구권이 무엇을 대가로 생기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대법원 2016. 11. 25. 선고 2014다82439 판결도 주요한 발생원인이 개시 전에 갖추어졌다면 금액이나 채권이 뒤에 구체화되더라도 회생채권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판결은 공동불법행위자의 구상금 사건입니다. 납품대금과 같은 사실관계는 아니지만 “나중에 돈을 청구하게 됐다”는 사정과 원인의 발생을 구별해야 한다는 판단 틀을 보여줍니다.
신청 전 물품도 공익채권이 되는 예외가 있습니다
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항 제8의2호는 신청 전 20일 이내에 채무자가 계속적이고 정상적인 영업활동으로 공급받은 물건의 대금청구권을 공익채권으로 정합니다. 신청 전 채권이라고 전부 같은 방식으로 묶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기준은 개시결정일이 아니라 개시신청일이고, 대상은 법에서 정한 물건의 공급입니다.
“회생신청 20일 전후 거래”라는 표현도 사실은 부정확합니다. 신청 이전을 역산하는 규정이며 계속적이고 정상적인 영업활동이라는 요건이 있습니다. 물품 아닌 용역대금을 물품대금으로 이름만 바꾸어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비정상적인 거래인지, 무엇이 공급됐는지, 실제 공급을 받은 때가 언제인지는 각 거래의 자료로 검토해야 합니다.
대법원 2020. 3. 2. 선고 2019다243420 판결은 하루의 계산이 분류를 바꾼 사례입니다. 신청일이 2017년 6월 15일이라면 그날을 산입하지 않고 6월 14일부터 거꾸로 셉니다. 20일째인 5월 26일의 공급대금도 해당 기간 안에 들어갑니다. 달력에서 신청일을 첫날로 잡으면 경계에 있는 거래 하나가 잘못 빠집니다.
신청 뒤 공급과 개시 뒤 계약 이행은 따로 봅니다
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항 제8호는 계속적 공급의무를 부담하는 쌍무계약 상대방이 신청 후 개시 전까지 한 공급으로 생긴 청구권을 보호합니다. 앞서 본 제8의2호와 시간대도, 문언상 요건도 다릅니다. 계속적인 거래관계라는 말만으로 계약상 계속적 공급의무가 있다고 단정하지 말고, 개별 주문을 새로 받는 방식인지 공급할 의무가 계속 존재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개시 뒤에는 관리인이 한 자금차입 등 행위에 관한 제179조 제1항 제5호, 쌍방미이행 계약의 이행선택에 관한 제7호 등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1항은 개시 당시 채무자와 상대방 모두 이행을 완료하지 않은 쌍무계약에서 관리인이 해제·해지 또는 이행을 선택할 수 있게 합니다. 그에 따라 관리인이 채무를 이행하는 경우 상대방의 청구권은 제7호의 공익채권이 됩니다.
다만 납품업체가 이미 자신의 의무를 모두 이행하고 대금만 못 받은 상황과, 양쪽 의무가 남은 상황은 구별해야 합니다. 기본계약이 하나라는 이유로 오래된 미수금까지 모두 이행선택의 대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계약이 여러 급부로 나뉘는지, 어떤 의무가 남았는지, 관리인의 선택이 어느 부분에 미쳤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 거래 위치 | 핵심 확인사항 |
|---|---|
| 신청 전 20일 이내 물품 | 계속적·정상적 영업활동과 실제 공급일 |
| 신청 후·개시 전 공급 | 쌍무계약상 계속적 공급의무 |
| 개시 당시 쌍방 의무 잔존 | 관리인의 이행선택과 대상 급부 |
| 청구·변제기만 개시 뒤 | 주요 발생원인이 언제 갖춰졌는지 |
이 표는 날짜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분류표가 아닙니다. 같은 날짜의 거래라도 해당 법적 근거가 달라질 수 있다는 확인표입니다. 서로 다른 규정의 단어를 섞으면 정상적인 영업활동과 계속적 공급의무를 같은 요건으로 오해하게 됩니다.
[이 글 요약]
① 문제: 같은 미수금 장부에 다른 종류의 채권이 섞여 있습니다.
② 판단: 발생원인과 공급 시점을 나눈 뒤 특별규정을 대조합니다.
③ 기억할 말: 먼저 거래를 나누어야 받을 길도 정확히 보입니다.
판사는 기록에서 무엇을 보는가
먼저 펴는 곳|미수금 총액보다 거래별 발주서·납품서를 먼저 나눕니다. 장부의 합계와 법률상 채권의 단위가 같은지 확인합니다.
멈추는 곳|신청일과 개시결정일 사이에서 멈춥니다. 결정문 날짜 하나로 모든 거래를 구획하지 않습니다.
맞춰보는 곳|인수·검수 자료를 계약의 잔존 의무 및 관리인의 지시와 대조합니다. 청구서 발행만으로 공급일을 정하지 않습니다.
여백의 메모|공익채권 주장의 근거 조문을 거래마다 적습니다. 분류를 다투는 동안 회생채권 신고 등 별도 권리보전 검토도 놓치지 않습니다.
분류는 미수금의 이름을 붙이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발생원인, 특별규정, 실제 회수 가능성을 순서대로 보는 틀이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두 질문은 법적 지위를 결정하고, 마지막 질문은 그 지위를 어떻게 행사할지를 정합니다. 분류를 알게 됐다고 지급이 확실하다고 말하거나, 돈을 받기 어렵다고 분류 검토를 포기하면 서로 다른 문제가 섞입니다.
회생채권인지 공익채권인지는 돈을 늦게 청구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돈이 어떤 거래에서 언제 생겼는지에서 출발합니다. 하나의 장부를 거래별 기록으로 풀어놓는 일이 회생 국면에서의 첫 판단입니다. 이 글은 2026년 10월 6일 확인한 현행 규정을 기준으로 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된 칼럼이며, 소속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개별 사안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필요한 경우 법률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글쓴이 손호영
부장판사 ·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형사조) · 전 서울회생법원 판사 · 서울대 법학박사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대신 정리해주는 3개년 형사판례공보』 저자 · 법률저널 〈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60회 이상 연재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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