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멈춘 화면과 이어지는 말
강연장의 발표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앞줄 모니터의 프롬프트가 멈춰 있었습니다. 이럴 때는 당황스럽죠. 주최자는 아직 답이 오지 않는 업체 와의 채팅창을 들고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법률가는 먼저 약속된 지원 범위와 장애가 시작된 시각을 기록하자고 합니다. 서비스가 어떤 조건으로 제공되기로 했는지, 언제부터 작동하지 않았는지, 업체가 어떤 답을 했는지는 “책임과 정산”을 살피기 위한 기본 자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때 아이는 노트북의 빈 문서를 가리켰습니다. 고치는 동안 발표 내용을 거기에 적어 주면 안 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복구를 기다리는 일, 향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일과 지금 참여할 수 있게 돕는 일은 같은 시간이지만 서로 다른 과제입니다. 화면을 고치는 사람의 사정이 아니라 내용을 놓치고 있는 사람의 시간을 먼저 본 것입니다.
멈춘 화면 앞에서 무엇이 나중을 위한 확인이고 무엇이 지금을 위한 행동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절차가 사람을 기다리게 하지 않도록, 사실을 남기는 손과 내용을 이어 주는 손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글쓴이 손호영
부장판사 ·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형사조) · 전 서울회생법원 판사 · 서울대 법학박사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대신 정리해주는 3개년 형사판례공보』 저자 · 법률저널 〈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60회 이상 연재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설명합니다.
자막 복구를 기다리는 동안, 강연 내용은 누구에게 멈춰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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