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기는 답을 빨리 보여줍니다. 숫자를 넣고 버튼을 누르면 결과가 나옵니다. 그런데 무엇을 계산할지 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립니다. 원금과 이자를 더하면 충분한지, 중간에 갚은 돈이 있다면 무엇부터 줄여야 하는지, 여러분이 정말 알고 싶은 것이 이자액인지 남은 빚인지부터 물어야 했습니다.
홈페이지에 놓을 유용한 도구가 뭐가 있을지 고민하면서, <계산 도구>를 구상하면서 그 차이를 생각했습니다(현재 제작 중입니다!! 곧 선보일 예정입니다). 단순한 이자 계산보다 중간 변제까지 반영해 결국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시작일과 종료일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산을 정교하게 하는 일보다 먼저, 사람이 그 도구에 가져올 질문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문제를 푸는 능력과 질문을 고르는 능력
Håkon Evjemo의 Psyche 에세이 삶을 끊임없이 최적화하려는 태도를 살핍니다. 그는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의 문제와 신비의 구별을 빌려, 삶 전체를 바깥에 놓고 고쳐야 할 대상으로 취급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해결할 문제와 내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물음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그 구별을 기술이나 계획을 버리라는 말로 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도구가 정확히 할 수 있는 일을 알고, 그 도구에 넘기지 못한 선택도 알아보자는 물음으로 읽었습니다. 산식을 정하고 입력값을 확인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다만 산식에 넣을 목표까지 저절로 옳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부터는 그 글을 읽고 이어 가는 제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남은 채무를 계산하는 도구라면 특정한 전제에서 결과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돈을 어떤 일정으로 감당할지, 서로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지, 다투는 비용과 시간을 어디까지 받아들일지는 숫자 옆에 남습니다. 금액이 결정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것과 결정 전체가 금액으로 환원된다는 것은 다릅니다.
목표가 먼저 정해졌을 때의 정확함
최적화가 힘을 발휘하는 곳은 목표와 제약이 비교적 분명한 상황입니다. 같은 계산을 반복하지 않도록 만들고, 빠뜨린 항목을 보여 주고, 조건을 바꾸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도구는 사람의 시간과 주의를 아낍니다. 사람이 해야 할 고민을 줄이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목표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 결과를 먼저 계산할 때 생깁니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낮은 비용이라는 목표는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어느 일을 더 많이 하려는지, 그렇게 아낀 시간을 어디에 둘지, 속도를 높이며 잃을 것은 무엇인지까지 답하지는 않습니다. 수치가 있어 선택이 쉬워졌어도 선택의 이유가 생겼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도구를 만들 때 입력란 옆의 설명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용자가 어떤 날을 시작일로 넣어야 하는지 모르면 정밀한 결과도 불안정해집니다. 삶의 계획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지금 상태를 평가하는지 모르면 계산은 정교해지고 판단은 흐려질 수 있습니다. 기준을 적는 일은 계산 이전의 일입니다.
빈칸을 오류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상속 관련 도구를 생각할 때도 재산과 채무를 먼저 적고, 잘 모르는 것은 그대로 둘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모르는 값에 임의의 숫자를 넣어 결과를 완성하는 것보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칸을 보여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완성된 화면이 언제나 더 정확한 화면은 아닙니다.
이 원칙은 생활의 선택에도 옮겨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겠다는 대답을 곧바로 의지가 부족하다는 진단으로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정보가 부족한지, 서로 다른 가치가 충돌하는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어서 모르는지를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모름에도 내용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확인하면 다음에 할 일이 달라집니다.
물론 모른다고 남겨 두기만 하면 기회나 기한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빈칸을 허용한다는 말에 확인할 방법과 시점을 붙이고 싶습니다. 자료를 찾을 일인지, 누군가에게 물어볼 일인지, 작은 시도를 해볼 일인지 적어 두는 것입니다. 빈칸을 지우는 속도보다 어떤 방식으로 채울지 정하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불편함에 버튼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설명이 명확한 문제에는 좋은 버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료를 정렬하거나 계산을 반복하거나 확인 항목을 보여 주는 버튼입니다. 그러나 어떤 관계를 계속할지, 어떤 일을 오래 하고 싶은지 같은 물음에는 한 번의 클릭으로 끝나는 답이 잘 어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답을 얻은 뒤에도 그 선택 안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물음을 남겨 둔다고 무책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답할 수 있는 부분과 계속 살펴야 할 부분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돈과 시간은 계산하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는 정하고, 아직 알지 못하는 마음은 관찰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방법이 다른 모든 방법을 밀어내지 않도록 순서를 잡는 일입니다.
저는 정확함이란 답의 소수점을 늘리는 능력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에 대한 답인지, 어느 조건에서 맞는지, 무엇은 아직 답하지 않았는지를 함께 말하는 능력입니다. 계산 결과에 전제를 붙이는 도구처럼, 제 생각에도 전제를 붙이고 싶습니다. 그래야 선택이 바뀌었을 때 무엇이 달라졌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답 밖에 남은 일을 알아보는 시간
좋은 도구는 사람을 대신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데서 완성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복 계산을 맡아 준 뒤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을 넓혀 주면 충분히 큰 일을 합니다. 결과 옆에서 지금 더 확인할 자료와 생각할 문제를 구별할 수 있다면 숫자는 판단을 재촉하는 장식이 아니라 판단을 돕는 근거가 됩니다.
저에게 남는 문장은 이렇습니다. 계산이 끝났다고 선택까지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 결과가 지금 어떤 결정의 자료인지 이름을 붙여 보고 싶습니다. 결과를 읽는 자리가 분명해지면 도구에 맡길 일과 제가 선택할 일이 함께 보입니다. 그리고 계산 밖에 남은 것을 실패한 계산으로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물음은 내가 어떤 시간을 살고 싶은지 계속 물어보게 합니다.
저라면 모든 일을 최적화하고 싶어질 때 이렇게 살펴보고 대응할 것 같습니다
저라면 먼저 목표와 입력값을 종이에 적고, 확실한 값과 모르는 값을 나누어 볼 것 같습니다. 계산으로 답할 부분과 선택의 이유를 묻는 부분을 구별하겠습니다. 반복 작업은 도구에 맡기되, 그 결과로 아낀 시간을 어디에 쓸지 제가 정하겠습니다. 도구가 보여 주는 값과 제가 원하는 방향을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직 모르는 부분은 확인할 방법과 시점을 붙여 남겨 두겠습니다. 목표 자체가 흔들린다면 수치를 더 정교하게 만들기 전에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다시 살필 것 같습니다.
글쓴이 손호영
부장판사 ·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형사조) · 전 서울회생법원 판사 · 서울대 법학박사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대신 정리해주는 3개년 형사판례공보』 저자 · 법률저널 〈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60회 이상 연재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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