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M 앞에서 예상하지 못한 입금 내역을 확인하고 멈춘 사람의 시네마틱 셀 일러스트

잘못 들어온 돈을 써도 될까요 — 착오송금 3,200만 원이 횡령이 된 이유

안녕하세요.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풀어드리는 손호영입니다.

〈판사의 렌즈〉
계좌에 표시된 숫자와 법률상 소유는 다를 수 있습니다. 돈이 들어온 경위와 그 사실을 안 뒤의 행동을 시간순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글 요약]
1. 거래관계가 전혀 없어도 착오로 입금된 돈을 알면서 쓰면 횡령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2. 대법원은 송금인과 수취인 사이에 신의칙상 돈을 보관하고 반환할 관계가 생긴다고 보았습니다.
3. 잘못 들어온 돈은 쓰기 전에 은행을 통해 원인을 확인하고 반환 절차를 남겨야 합니다.

잔액이 갑자기 3,200만 원 늘어난 장면

피고인의 은행계좌에 모르는 사람이 3,200만 원을 잘못 송금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물품 거래도, 대여관계도, 정산할 돈도 없었습니다. 피고인은 입금 경위를 알게 된 뒤에도 돈을 돌려주지 않고 일부를 인출해 사용했습니다. 표면만 보면 ‘은행계좌의 명의자가 자기 계좌에서 돈을 찾은 일’입니다. 그러나 형사재판이 물은 질문은 달랐습니다. 그 돈을 법률상 누구를 위해 보관하고 있었는가였습니다.

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891 판결은 착오송금임을 알면서 임의로 인출·소비한 행위에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원심은 송금인과 피고인 사이에 아무 거래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점유이탈물횡령 정도의 문제로 보았지만, 대법원은 거래관계가 없어도 수취인이 돈을 반환할 때까지 보관하는 지위에 놓인다고 보았습니다.

표면의 문제는 ‘뜻밖의 이익’, 법적 쟁점은 ‘보관관계’였습니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사람이 그 재물을 자기 것처럼 처분할 때 문제됩니다. 계좌이체된 돈은 현금 뭉치처럼 눈앞에 놓인 물건이 아닙니다. 은행과 예금주 사이에는 예금채권이 생기므로, ‘송금인의 현금 그 자체를 보관한다’고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건의 결정적 쟁점은 착오송금이라는 사정만으로 송금인과 수취인 사이에 형법상 보호할 만한 보관관계가 생기는지였습니다.

대법원은 송금절차를 잘못 밟아 계좌에 돈이 들어온 경우 수취인은 송금인에게 반환할 의무를 부담하고, 신의성실 원칙에 비추어 그 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계약서가 없다는 사실은 반환관계를 없애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무 원인 없이 들어왔다는 점이 ‘내 돈으로 쓸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했습니다.

기록에서 갈린 사실법적 의미확인할 자료
입금 원인정상 거래인지 착오인지거래내역·송금메모·상대방 연락
인지 시점고의가 생긴 시점은행 안내·문자·통화기록
이후 처분보관 의무에 반한 영득행위인지인출·이체·결제 내역
반환 노력범행 전후 정황과 피해회복은행 신고·반환합의·공탁

결정적 사실은 돈이 들어온 때보다 ‘안 뒤에 무엇을 했는가’였습니다

계좌에 원인 모를 돈이 들어온 순간 곧바로 범죄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입금 자체는 수취인이 선택한 일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판단은 수취인이 착오송금임을 언제 알았고, 그 뒤 돈을 어떻게 다뤘는지로 이동합니다. 은행에서 연락을 받았는데도 다른 계좌로 옮겼는지, 현금으로 인출했는지, 생활비나 채무 변제에 썼는지가 시간축 위에 놓입니다.

반대로 입금 사실을 몰랐거나 정당한 받을 돈이라고 합리적으로 믿었다면 고의 판단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신이 받을 돈과 금액·시기가 우연히 맞았던 경우, 상대방과 정산 중이었던 경우, 송금메모가 불명확한 경우에는 착오 인식의 시점을 더 세밀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판결의 결론을 ‘잘못 들어온 돈은 무조건 횡령’이라는 문장으로 줄이면 이 중요한 조건이 사라집니다.

은행에 돌려달라고 말하는 것과 직접 보내는 것은 다릅니다

원인을 모르는 입금이 확인되면 우선 해당 돈을 건드리지 말고 거래은행에 문의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연락해 온 사람이 알려주는 다른 계좌로 곧바로 송금하면, 보이스피싱이나 제3자 사기에 연루된 자금 흐름일 가능성을 새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은행의 공식 착오송금 반환 절차를 이용하고, 문의 시점과 안내 내용, 반환 결과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일부를 썼다면 숨기기보다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반환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다만 사후 반환이 곧바로 범죄 성립을 없애는 것은 아닙니다. 고의와 영득행위는 사용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반환은 피해회복과 양형에서 별도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사건을 다시 읽는 이유

간편송금과 모바일뱅킹은 송금의 속도를 높였지만, 화면의 잔액이 권리의 원인을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기술은 이체를 즉시 끝내도 법률은 그 돈이 왜 이동했는지를 다시 묻습니다. 사건이 남긴 한 문장은 간단합니다. 계좌에 들어온 돈은 사실이지만, 내 돈인지 여부는 그 원인이 결정합니다.

뜻밖의 입금은 횡재가 아니라 원인을 확인해야 할 법률관계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판사는 기록에서 무엇을 보는가

먼저 펴는 곳

입금 전후 계좌내역과 돈을 받을 계약·정산 사유가 있었는지부터 확인합니다.

멈추는 곳

수취인이 착오를 알게 된 정확한 시점에서 멈춥니다. 그 전과 후의 처분은 의미가 다릅니다.

맞춰보는 곳

은행 연락, 송금인 연락, 인출·이체 내역을 분 단위로 맞춰 고의와 처분을 봅니다.

여백의 메모

잔액이라는 결과보다 원인과 인식의 시간을 먼저 읽어야 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된 칼럼이며, 소속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개별 사안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필요한 경우 법률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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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들어온 것이 돈이 아니라 가상자산이라면요?

비트코인 같은 가상자산이 잘못 이체된 경우에는 다릅니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대상으로 하는데, 가상자산은 디지털 정보로 이루어진 ‘재산상 이익’으로 취급됩니다. 그래서 비트코인 이체 사건에서는 재산상 이익을 대상으로 하는 배임죄의 성립이 문제되는데요,
하지만 배임죄도 상대방에게 손해를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먼저 마음대로 쓴 사람(피고인)을 배임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는 지위가 인정되어야 하는데, 대법원은 원인불명으로 이체받은 비트코인을 다른 계정으로 옮긴 사건에서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했습니다.

잘못 받은 가상자산을 돌려줄 부당이득반환의무가 생길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상대방의 재산을 맡아 보호·관리하는 관계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였습니다. 자신의 반환채무를 이행할 의무와, 상대방의 재산을 관리하는 임무는 구별됩니다. 돈을 갚아야 하는 사람이 곧바로 채권자의 재산관리자가 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대법원 2021. 12. 16. 선고 2020도9789 판결).

은행 예금의 착오송금에서는 계약관계가 없어도 신의칙상 보관관계를 인정해 왔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가상자산의 거래 구조와 법정화폐와 다른 법적 취급 등을 고려하여, 그 법리를 그대로 옮겨 배임죄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처벌규정과 필요한 신임관계가 갖추어지지 않았는데도 ‘예금과 비슷하니 처벌하자’고 범위를 넓히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잘못 들어온 가상자산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판결은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한 것이며, 민사상 부당이득반환의무는 별도로 문제될 수 있습니다. 돌려주어야 한다는 판단과 형사처벌할 수 있다는 판단은 서로 다른 요건을 따릅니다.

이 판단을 실제 사건에 적용하는 방법

착오송금 횡령에 관한 사건을 볼 때는, 입금 전후 계좌내역과 돈을 받을 계약·정산 사유가 있었는지부터 확인합니다.

반대되는 결론도 먼저 세워 보아야 합니다. 대법원은 송금인과 수취인 사이에 신의칙상 돈을 보관하고 반환할 관계가 생긴다고 보았습니다. 이 판단과 반대되는 사정이 기록에 실제로 존재하는지 찾고, 없다면 없다는 이유까지 설명해야 합니다. 한쪽 주장에 유리한 사실만 모으면 결론은 빨라지지만 상대방의 가장 강한 반론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반론을 검토한 뒤에도 남는 근거가 최종 결론의 무게가 됩니다.

시간의 순서도 별도의 증거입니다. 은행 연락, 송금인 연락, 인출·이체 내역을 분 단위로 맞춰 고의와 처분을 봅니다. 사람의 기억은 결과를 안 뒤 다시 배열되기 쉬우므로, 당시 만들어진 문서·메시지·접수기록을 우선하고 사후 진술이 그것과 맞는지 확인합니다. 날짜가 맞지 않으면 단순 오기인지, 기억의 변화인지, 주장 전체에 영향을 주는 불일치인지 나누어 적어야 합니다.

글쓴이 손호영

부장판사 ·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형사조) · 전 서울회생법원 판사 · 서울대 법학박사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대신 정리해주는 3개년 형사판례공보』 저자 · 법률저널 〈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60회 이상 연재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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