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서 거리를 두며 방어 자세를 취한 사람을 표현한 시네마틱 셀 일러스트

정당방위는 누가 먼저 때렸는지만 볼까요? — 현재성·필요성·상당성의 구조

안녕하세요.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풀어드리는 손호영입니다.

〈판사의 렌즈〉
폭력 사건의 한 장면을 떼어내면 방위와 보복을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공격의 시작·지속·종료와 반격의 시점을 한 시간축에 놓아야 합니다.
[이 글 요약]
1. 정당방위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막기 위한 행위여야 합니다.
2. 상대가 먼저 공격했더라도 위험이 끝난 뒤의 보복이나 현저히 과도한 수단은 달리 평가됩니다.
3. 누가 먼저보다 언제, 무엇을 막기 위해, 어느 정도로 대응했는지가 핵심입니다.

“상대가 먼저 때렸습니다”라는 한 문장

싸움 사건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말입니다. CCTV를 보면 상대방이 먼저 손을 뻗은 장면이 확인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뒤 상대방이 넘어졌고, 피고인이 다시 다가가 여러 차례 때렸다면 모든 행위가 하나의 정당방위로 평가될까요. 법은 최초 공격의 순서만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형법 제21조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한 행위에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벌하지 않는다고 정합니다. 조문 안에는 현재성, 부당성, 방위 목적, 상당성이라는 서로 다른 질문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 침해가 ‘현재’ 진행 중이었는가

위험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거나 이미 끝난 뒤라면 원칙적으로 현재의 침해가 아닙니다. 상대방이 흉기를 들고 접근해 곧바로 사용할 위험이 명백한 경우에는 실제 상처가 생기기 전에도 현재성을 인정할 여지가 있습니다. 반대로 상대가 공격을 멈추고 돌아선 뒤 따라가 때렸다면 방어보다 보복에 가까워집니다.

현실의 다툼은 초 단위로 변합니다. 처음에는 방어였던 행위가 상대를 제압한 뒤부터 공격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를 ‘한 번의 싸움’으로 묶기보다 동작별로 나누어 현재성이 유지됐는지 봅니다.

둘째, 막으려 한 침해가 부당했는가

적법한 체포나 정당한 직무집행에 단순히 저항하는 행위는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습니다. 다만 공무원의 행위가 권한을 명백히 벗어나 현재의 위법한 침해가 되었다면 별도의 평가가 필요합니다. 당사자가 상대의 행위를 부당하다고 느꼈다는 주관적 인상과 법률상 부당한 침해는 구별해야 합니다.

셋째, 목적이 방위였는가

행위자에게 화가 나고, 모욕감, 응징의 마음이 함께 있었다고 해서 방위 목적이 반드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위험 속에서 복합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행위가 객관적으로 침해를 막는 방향으로 이루어졌고, 당시 행위자도 그 위험을 인식해 방어하려 했는지입니다.

판단 질문방위 쪽 사정보복·공격 쪽 사정
위험의 시점공격이 진행 중·임박상대가 물러난 뒤 추격
행위의 방향거리 확보·제압·도주넘어진 상대에 반복 공격
수단의 정도위험에 대응한 제한적 힘위험과 현저히 불균형한 수단
종료 뒤 행동즉시 중단·신고추가 폭행·증거 은폐

넷째, 방위행위에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가

상당성은 단순한 무기 대 무기의 산술비교가 아닙니다. 침해되는 법익의 종류와 위험 정도, 공격의 방법과 강도, 인원 차이, 장소, 도망이나 도움 요청의 현실적 가능성, 순간적 판단의 긴박성을 종합합니다. 사후에 느긋하게 상상한 최선의 선택을 현장의 사람에게 그대로 요구해서는 안 되지만, 위험이 사라진 뒤의 현저한 과잉까지 허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방위의 정도를 초과한 경우에는 과잉방위가 문제됩니다. 형법은 정황에 따라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고, 야간 등 불안·공포·경악·흥분 상태에서 발생한 특별한 경우를 따로 고려합니다. 정당방위와 과잉방위, 단순 범죄를 한 줄로 배열하면 중간영역을 놓치기 쉽습니다.

반대 논리: 피할 수 있었으면 방위가 아닌가

우리 법이 모든 경우에 도망의무를 명문으로 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회피 가능성은 대응 수단이 필요하고 상당했는지 판단하는 하나의 사정이 됩니다. 안전하게 문을 닫거나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는지, 가족이나 제3자를 두고 혼자 떠날 수 있었는지, 위험이 너무 급박해 다른 선택을 기대하기 어려웠는지를 구체적으로 봐야 합니다.

제가 세운 판단 프레임: 시간·목적·수단·종료

저는 정당방위를 네 질문으로 정리합니다. ① 그 순간 위험이 살아 있었는가, ② 행위가 위험을 막는 방향이었는가, ③ 선택한 힘이 그 위험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는가, ④ 위험이 끝난 뒤 즉시 멈췄는가입니다. 이 프레임은 ‘상대가 먼저’라는 출발점을 존중하면서도 이후의 모든 행동을 자동으로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정당방위의 핵심은 먼저 공격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위험을 멈추기 위해 어디까지 필요했는지를 묻는 데 있습니다.

판사는 기록에서 무엇을 보는가

먼저 펴는 곳

CCTV 원본과 112 신고, 상처 사진을 먼저 펼쳐 공격 전후의 시간축을 만듭니다.

멈추는 곳

상대의 위험이 끝났다고 볼 수 있는 바로 그 장면에서 멈춥니다.

맞춰보는 곳

각 타격·밀침·도구 사용을 위험의 강도와 맞춰 방위에서 공격으로 바뀐 순간을 봅니다.

여백의 메모

싸움 전체에 하나의 이름을 붙이지 말고 동작별 법적 의미를 구별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된 칼럼이며, 소속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개별 사안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필요한 경우 법률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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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손호영

부장판사 ·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형사조) · 전 서울회생법원 판사 · 서울대 법학박사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대신 정리해주는 3개년 형사판례공보』 저자 · 법률저널 〈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60회 이상 연재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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