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풀어드리는 손호영입니다.
사후승인 제도라고 해서 승인 전의 명령이 비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록에서는 명령의 내용과 고지, 그리고 나중의 승인 여부를 시간순으로 나눠 봅니다.
1. 경찰은 급박한 스토킹 위험에 긴급응급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
2. 판사 승인 전 위반도 원칙적으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3. 사후승인은 명령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승인 전 몇 시간에 생긴 위반이 문제였습니다
경찰은 스토킹 피해를 막기 위해 상대방에게 접근금지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등의 긴급응급조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조치의 내용과 불복방법을 고지받았지만, 판사의 사후승인이 있기 전에 그 조치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의 쟁점은 간단합니다. 아직 판사의 승인이 오기 전인데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대법원 2026. 9. 3. 선고 2026도100088 판결은 이에 대해 긍정했습니다. 긴급응급조치는 급박한 위험에서 먼저 작동하고 이후 사법적 통제를 받는 구조입니다. 승인 전이라는 한 장면만 떼어 명령의 효력을 부정하면, 바로 그 사이의 위험을 막기 위해 만든 제도가 작동하기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법이 따로 적어 둔 예외를 먼저 읽었습니다
스토킹처벌법은 ‘사법경찰관은 검사가 긴급응급조치에 대한 사후승인을 청구하지 아니하거나 지방법원 판사가 사후승인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즉시 긴급응급조치를 취소하여야 한다’고 규정(제5조 제4항)하고 있을 뿐, 지방법원 판사의 사후승인이 있기 전까지 긴급응급조치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긴급응급조치 위반에 관하여 ‘검사가 사후승인을 청구하지 아니하거나 지방법원 판사가 승인을 하지 아니한 경우’를 처벌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을 뿐, 지방법원 판사의 사후승인 이전의 긴급응급조치 위반행위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판사가 긴급응급조치를 승인하기 이전에 긴급응급조치를 불이행한 경우에도 ‘긴급응급조치 불이행’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사후승인이 아무 의미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승인이 거절되면 처벌의 전제가 사라질 수 있고, 조치 자체에 대한 불복절차도 보장됩니다. 다만 승인 전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조치를 무시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과, 사후통제의 결과에 따라 책임을 조정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고지의 기록이 왜 중요했을까요
처벌은 명령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따라오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어떤 내용의 조치를 언제 고지했는지, 위반행위가 그 뒤에 있었는지, 사후승인이 청구되고 실제로 승인되었는지를 맞춰야 합니다. 특히 전화·문자·현장 접근처럼 행위가 이어질 때에는 조치 전후의 시간표가 결정적입니다.
| 확인 단계 | 기록에서 볼 것 |
|---|---|
| 명령 | 누가 언제 어떤 내용을 고지했는가 |
| 행위 | 고지 뒤 어떤 접근·연락이 있었는가 |
| 사후통제 | 검사의 청구와 판사의 승인 여부는 무엇인가 |
| 예외 | 불청구·불승인 등 법정 제외사유가 있는가 |
피고인이 조치의 범위와 불복방법을 알지 못했다면 고의와 절차 보장의 문제가 생깁니다. 반대로 고지서, 통화녹음, 문자 전송기록과 승인서가 시간순으로 연결되면 ‘승인 전’이라는 주장만으로 책임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사건의 본질은 승인 도장이 찍힌 한 시각이 아니라 위험 방지와 사후통제가 이어지는 전체 구조에 있었습니다.
긴급조치는 영구한 명령이 아닙니다
긴급응급조치는 잠정적 조치입니다. 수사기관의 판단만으로 장기간 기본권을 제한하도록 만든 제도가 아닙니다. 신속성 때문에 먼저 작동하지만, 검사의 청구와 판사의 승인이라는 통제를 뒤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래서 신속성과 통제 중 하나를 포기하는 제도가 아니라 두 요소의 순서를 조정한 제도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개별 사건에서는 조치 대상과 거리, 연락수단, 고지 방식, 승인 여부가 모두 달라질 수 있습니다. 조치가 법정 요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승인되지 않은 경우까지 이 판결의 결론을 그대로 확장할 수 없습니다. 판결이 말한 것은 적법하게 고지되고 나중에 승인된 긴급응급조치의 승인 전 위반을 일률적으로 처벌 밖에 둘 수 없다는 점입니다.
오늘 다시 읽을 이유
스토킹 위험은 짧은 시간 안에 커질 수 있습니다. 법이 사후승인 방식을 택한 이유는 그 짧은 공백을 방치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동시에 판사의 통제와 불복방법을 둔 이유는 신속한 조치가 자의적인 명령이 되지 않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두 목적은 서로 반대편에 있지 않습니다.
이 사건은 절차의 이름보다 작동 순서를 보라고 말합니다. ‘사후’라는 단어 때문에 승인 전을 법의 공백으로 읽지 말고, 명령·고지·위반·청구·승인 또는 불승인을 한 줄의 시간표에 놓아야 합니다. 처벌 여부는 그 연결이 실제 기록으로 증명되는지에서 갈립니다.
판사는 기록에서 무엇을 보는가
먼저 펴는 곳
긴급응급조치 결정서와 고지 확인 자료를 먼저 폅니다.
멈추는 곳
고지 시각과 첫 위반행위 사이에서 멈춥니다.
맞춰보는 곳
통신내역·현장영상·승인서의 시간을 한 줄에 맞춥니다.
여백의 메모
“승인 전”이라는 말만 쓰지 않고, 이후 승인 또는 불승인의 결과를 함께 적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된 칼럼이며, 소속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개별 사안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필요한 경우 법률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글쓴이 손호영
부장판사 ·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형사조) · 전 서울회생법원 판사 · 서울대 법학박사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대신 정리해주는 3개년 형사판례공보』 저자 · 법률저널 〈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60회 이상 연재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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