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풀어드리는 손호영입니다.
증명책임은 자료를 많이 낸 사람을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끝내 남은 빈칸을 누구의 불이익으로 읽을지 정하는 문제입니다.
배우자와 부정행위를 한 제3자가 “그 부부는 이미 끝난 사이였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별거했다는 자료도 있고, 다툼이 있었다는 메시지도 있습니다. 손해배상을 청구한 배우자가 자신의 혼인이 아직 회복 가능한 상태였다는 사실까지 증명해야 할까요?
그렇게 볼 수는 없습니다. 대법원 2024. 6. 27. 선고 2022므13504·13511 판결은 부정행위 당시 부부공동생활이 회복 불가능하게 파탄됐다는 사정은 이를 주장하는 제3자가 증명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파탄의 정도, 시점, 증명책임을 세 칸으로 나누면 이 결론이 명확해집니다.
먼저 침해한 이익을 특정합니다
제3자의 부정행위가 문제되는 이유는 그 행위가 혼인의 본질인 부부공동생활을 침해하거나 유지에 방해가 되고 배우자로서의 권리에 정신적 손해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혼인신고가 남아 있는지라는 형식만으로 모든 판단을 하는 구조는 아닙니다.
판례는 법률상 이혼하지 않았더라도 실질적으로 공동생활이 파탄돼 회복할 수 없는 상태였다면, 제3자와의 성적 행위로 그 공동생활의 유지가 침해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예외를 인정합니다. 보호할 공동생활이 이미 그러한 상태였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행위에 대한 일상적인 호불호와 다른 법적 질문입니다.
예외가 있다는 사실은 “부부가 불화했으니 책임이 없다”는 말과 같지 않습니다. 다툼이 있거나 잠시 떨어져 지낸 사실만으로 회복 불가능한 파탄에 이르렀다고 자동 판단하지 않습니다. 부부공동생활의 실체가 어느 정도 남아 있었는지가 핵심입니다.
별거는 자료이지 곧바로 결론은 아닙니다
별거의 기간과 이유, 경제생활과 돌봄의 관계, 관계를 회복하려는 움직임 등은 전체 상태를 읽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항목은 판결의 결론을 자동으로 산출하는 체크리스트가 아닙니다. 어떤 사실이 있는지와 그 사실이 파탄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사이에는 해석이 필요합니다.
업무나 치료, 가족 돌봄 때문에 생활 장소가 달랐던 경우와 부부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별도 생활을 시작한 경우는 같은 별거라도 다릅니다. 이 설명은 가상의 비교입니다. 특정한 생활 방식이 곧 파탄을 의미한다고 낙인찍지 않고 자료의 맥락을 읽기 위한 예입니다.
“잘 지내지 않았다”는 표현도 구체적인 사실로 바꿔야 합니다. 누가 어느 시점에 무엇을 했고 그 뒤에 어떤 관계가 이어졌는지를 확인합니다. 어느 한 배우자가 제3자에게 자기 혼인이 끝났다고 말한 자료는 그 말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 말의 내용대로 실제 혼인이 파탄됐는지까지 한 번에 증명하지는 못합니다.
1. 제3자가 부정행위 전에 혼인이 이미 파탄됐다고 주장합니다.
2. 회복 불가능한 파탄의 정도와 부정행위 당시의 시점을 봅니다.
3. 그 예외를 주장하는 제3자가 해당 파탄을 증명해야 합니다.
부정행위 이후의 사정을 거꾸로 넣지 않습니다
평가할 기준 시점은 부정행위를 할 당시입니다. 부정행위가 알려진 뒤 별거가 시작되거나 이혼 절차가 진행됐다는 사실을, 그 이전에도 이미 혼인이 회복 불가능했다는 근거로 곧바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원인과 결과가 섞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뒤에 관계가 크게 악화됐다는 사정은 오히려 부정행위가 공동생활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과도 연결됩니다. 이후의 자료를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는 범위와 이후 발생한 변화를 구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이 기준 시점은 손해액이나 고의·과실을 판단하는 질문과도 다릅니다. 혼인의 상태를 확인했다고 제3자가 어떤 정보를 알고 있었는지, 손해가 어느 정도인지에 관한 모든 쟁점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축은 여러 판단을 서로 섞지 않도록 하는 장치입니다.
증명책임은 남은 불확실성의 처리 규칙입니다
민사재판에서는 모든 자료를 살펴도 사실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어느 쪽이 해당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지가 결론에 영향을 줍니다. 증명책임은 단순히 서류를 누가 먼저 내야 하는가의 문제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2024년 판결에서 원심은 손해배상을 청구한 배우자가 부정행위 당시 혼인이 회복 불가능하게 파탄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부정했습니다. 대법원은 그 증명책임 배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파탄의 예외를 주장하는 제3자가 해당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 중 본소 부분을 파기환송했습니다. 이 판결만으로 환송 뒤 위자료 액수나 최종 경과를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증명책임에 관한 법리와 원심 판단에 대한 평가입니다. 실제 결론의 범위를 넘어 “무조건 위자료를 받는다”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 구분 | 핵심 질문 | 주의할 혼동 |
|---|---|---|
| 파탄의 정도 | 공동생활이 회복 불가능했는가 | 불화·별거만으로 단정 |
| 파탄의 시점 | 부정행위 당시에 그러했는가 | 이후 이혼을 이전 상태에 대입 |
| 증명책임 | 예외 사실을 누가 증명하는가 | 청구자가 비파탄을 전부 증명해야 한다고 전제 |
원고가 자료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증명책임이 상대방에게 있다는 사실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기본 자료나 상대방 주장에 대한 반박 자료가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원고의 청구를 구성하는 사실은 여전히 검토해야 하며, 상대방이 낸 파탄 자료에 구체적으로 답할 필요도 있습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도 배우자의 설명을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 객관적인 경과를 정리해야 합니다. 혼인의 상태에 대한 믿음의 근거와 실제 상태를 구별하고, 책임이 부정되는 조건을 주장한다면 그 조건을 뒷받침할 자료를 제시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 문제에서 비난의 크기보다 주장과 자료의 역할을 먼저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정행위에 대한 평가만으로 쟁점을 묶으면 파탄의 시점과 증명책임이 사라집니다. 법적 판단은 그 두 가지를 남겨 둔 채 진행돼야 합니다.
판사는 기록에서 무엇을 보는가
먼저 펴는 곳
부정행위의 시점과 부부관계의 경과를 보여주는 자료를 먼저 펼칩니다. 이혼 관련 서류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고, 당시의 생활 관계를 나타내는 자료와 나란히 놓습니다.
멈추는 곳
“이미 끝났다”라는 진술에서 멈춥니다. 그 말의 주체와 시점, 청자, 설명할 사실을 구별합니다. 제3자가 들은 말과 실제 부부의 상태를 같은 줄에 적지 않습니다.
맞춰보는 곳
별거·경제생활·관계 회복 논의·부정행위의 시점을 맞춰 봅니다. 이후 만들어진 문서가 이전 상황을 설명하는 것인지 새로운 갈등을 보여주는 것인지 확인합니다.
여백의 메모
모든 자료를 본 뒤 남은 빈칸이 무엇인지 적습니다. 그 빈칸이 청구원인인지, 제3자가 주장한 예외인지 구별해야 증명책임에 따른 판단이 선명해집니다.
저라면 혼인 파탄을 다투는 상간 사건을 만나면 이렇게 검토하고 처리할 것 같습니다
저라면 부정행위 시점을 확인할 자료와 별거·생활비·관계 회복 논의의 경과를 먼저 시간순으로 정리할 것 같습니다. 불화가 있었는지와 회복 불가능한 파탄에 이르렀는지를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제3자가 예외를 주장하는 자료를 검토한 뒤 그 당시 공동생활의 실체를 보여주는 반박 또는 보강 자료를 확인하겠습니다. 부정행위 이후 발생한 변화는 이전 상태와 구별해서 다루겠습니다. 제3자가 알았던 사정과 실제 혼인 상태가 다르면 고의·과실 쟁점도 별도로 검토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된 칼럼이며, 소속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개별 사안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필요한 경우 법률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글쓴이 손호영
부장판사 ·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형사조) · 전 서울회생법원 판사 · 서울대 법학박사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대신 정리해주는 3개년 형사판례공보』 저자 · 법률저널 〈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60회 이상 연재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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