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풀어드리는 손호영입니다.
비가 온 뒤 드러난 문제를 어디서부터 볼까요
집을 산 뒤 첫 장마에 천장으로 물이 샌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계약서에는 “현 시설 상태에서 매매한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매도인은 이미 확인하고 샀으니 책임이 없다고 하고, 매수인은 겉으로 멀쩡한 집을 샀으니 고쳐달라고 합니다. 어느 쪽 입장도 그 자체로 결론이 되지는 않습니다.
현 상태 매매라는 문구가 있다고 누수 책임이 언제나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법적 하자가 있었는지, 매수인이 알았거나 과실로 몰랐는지, 면책 합의가 어떤 하자를 포함하는지, 매도인이 알고도 고지하지 않은 사실이 있는지를 차례로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는 개인 사이의 일반적인 주택 매매를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신축 분양이나 임대차의 하자 문제는 적용 규정과 책임 주체부터 다를 수 있습니다.
불편함과 법적 하자를 먼저 나눕니다
오래된 집이 새집과 같지 않다는 것은 거래 당사자가 예상할 수 있습니다. 낡은 벽지, 눈에 보이는 마모와 정상적으로 거주하기 어렵게 만드는 반복 누수는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약정한 품질, 건물 연식, 사용 목적과 가격에 반영된 상태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비가 샜다는 현상에서 곧바로 매도인의 책임까지 뛰어가지는 않습니다.
민법 제580조는 매매 목적물의 하자에 관한 담보책임을 정하면서 매수인이 하자를 알았거나 과실로 알지 못한 경우를 제외합니다. 매도인이 몰랐다는 주장과 매수인이 몰랐다는 주장은 서로 다른 위치에 있습니다. 이 책임에서 매도인의 과실만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출발부터 질문이 어긋납니다.
누수의 원인이 매매 전부터 있던 방수층 문제인지, 이후 매수인의 공사인지, 위층 배관 사고인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수리업체가 “누수”라고 적은 견적서는 증상의 존재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원인과 발생 시점까지 모두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점검 결과에서 관찰한 사실과 원인에 대한 추정을 나누어 읽어야 합니다.
“현 상태”와 “누수 책임 면제”는 같은 약정일까요
단순한 현 상태 확인인지, 특정한 결함을 전제로 가격을 조정한 것인지, 담보책임 자체를 면제한 합의인지 구분합니다. 계약 문구가 간단하다고 해석까지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집을 둘러보며 주고받은 메시지,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 수리 이력과 감액 이유가 문구의 의미를 밝히는 자료가 됩니다.
예를 들어 벽지 교체비를 감안해 값을 낮춘 상황과 누수 가능성을 설명받고 방수 공사비를 반영한 상황은 다릅니다. 두 경우 모두 매매가가 낮아졌다는 결과만으로 알 수 없는 지하 배관 결함까지 감수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을 알고 가격에 반영했는지를 특정해야 합니다.
| 확인할 사항 | 중요한 자료 | 구별할 문제 |
|---|---|---|
| 상태 확인 | 계약 문구·현장 사진 | 보이는 상태와 숨은 원인 |
| 면책 범위 | 감액 이유·협의 메시지 | 특정 하자와 모든 하자 |
| 매도인의 고지 | 수리 기록·누수 신고 | 추측과 실제 알고 있던 사실 |
| 손해 범위 | 원인 조사·공사 내역 | 필요한 보수와 추가 개선 |
[이 글 요약]
1. 현 상태 매매 문구가 모든 누수 책임을 없애지는 않습니다.
2. 하자·인식·특약 범위·고지를 따로 확인합니다.
3. 위험을 나눴는지 보려면, 정보를 나눴는지 먼저 봅니다.
면책을 약속해도 숨긴 사실은 별도로 봅니다
민법 제584조는 담보책임 면제 특약이 있더라도 매도인이 알고 고지하지 않은 사실 등에 대해서는 면책되지 않는다고 정합니다. 문제는 새 누수가 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매도인이 거래 당시 무엇을 알고 있었고 어떻게 알렸는지입니다.
과거 누수 수리비 영수증, 관리사무소 신고, 방수 공사 견적과 매수인에게 한 설명을 대조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전에 수리를 했다는 사실이 곧 모든 누수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알았다는 증명은 아닙니다. 이미 해결된 줄 알았는지, 반복될 가능성을 전달했는지까지 살펴야 합니다. 반대로 얼룩만 가린 채 재발 이력을 알리지 않았다면 그 은폐가 갖는 의미를 별도로 검토해야 합니다.
매수인의 권리 보호와 과도한 청구 사이의 기준
이달순의 2023년 법학논고 논문 「블랙컨슈머의 하자 주장에 대한 매도인의 권리 보호」는 하자가 존재하는지와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분쟁 구조를 다룹니다. 매수인이 상태와 사용 정보를 독점한 경우 공급자가 검증하기 어려워진다는 문제의식입니다. 주택 매매를 직접 판정한 논문은 아니지만, 일방의 설명만으로 하자와 비용을 확정하면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매도인의 숨김을 경계하는 것과 매수인의 모든 청구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수리비 중 누수 해결에 필요한 부분과 주택 전체를 더 좋게 바꾸는 비용을 나눠야 합니다. 저는 먼저 원인을 공동 확인할 기회를 두고, 긴급 조치와 본공사를 구별하는 방식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피해 확대를 막는 수리는 필요하지만, 수리 전 상태를 모두 없애버리면 책임과 금액을 판단할 증거도 함께 사라집니다.
해제와 손해배상, 두 시간 제한을 함께 봅니다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언제나 계약 전체를 해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580조가 준용하는 기준상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정도인지에 따라 해제와 손해배상을 구별해야 합니다. 일부분 보수로 정상 사용이 가능한 상태라면 집값 전부를 돌려달라는 요구가 그대로 인정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민법 제582조는 해당 권리를 하자 사실을 안 날부터 6개월 내 행사하도록 정합니다. 언제 발견했고 어떤 조치를 요구했는지 남기는 이유입니다. 이 기간과 별개로 소멸시효도 문제 됩니다. 대법원 2011. 10. 13. 선고 2011다10266 판결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하자담보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매수인이 목적물을 인도받은 때부터 진행한다고 보았습니다. 발견 뒤 6개월만 계산하면 항상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청구의 근거가 담보책임인지 별도 수리 약정인지, 불완전이행인지에 따라 검토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일단 내용증명 한 번 보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시효가 해결됐다고 여기지 말고 권리의 근거와 시간표를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이 글의 기준 법령은 2026년 10월 10일 현재 시행되는 민법입니다.
저는 특약보다 먼저, 거래 당시의 정보를 복원하겠습니다
“현 상태”라는 표현을 지우거나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사자가 알고 위험을 나눈 약정은 존중해야 하고, 알지 못한 사실을 알고 감수한 것으로 바꾸어서도 안 됩니다. 면책의 범위를 알려면, 먼저 서로에게 무엇이 알려졌는지 보아야 합니다. 누수의 원인, 전달된 정보, 약정한 책임, 필요한 보수비를 따로 정리하면 분쟁의 크기와 판단의 순서가 함께 드러납니다.
판사는 기록에서 무엇을 보는가
먼저 펴는 곳 — 계약서와 확인·설명서 옆에 입주 전후 사진을 둡니다. 같은 얼룩인지, 새로 생긴 현상인지 먼저 구별합니다.
멈추는 곳 — 매도인의 “그때는 고쳤다”는 설명에 멈춥니다. 수리한 부위와 이후 신고 이력이 일치하는지 확인합니다.
맞춰보는 곳 — 과거 공사 영수증, 누수 원인 점검과 새 견적을 비교합니다. 보수비라는 합계보다 어떤 원인을 고치는 비용인지 봅니다.
여백의 메모 — 가격 감액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위험을 감수했다고 적지 않습니다. 무엇에 대한 감액이었는지를 빈칸으로 남겨 질문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된 칼럼이며, 소속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개별 사안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필요한 경우 법률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글쓴이 손호영
부장판사 ·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형사조) · 전 서울회생법원 판사 · 서울대 법학박사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대신 정리해주는 3개년 형사판례공보』 저자 · 법률저널 〈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60회 이상 연재
재판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과 판단 구조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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